그들 각자의 진실: 그린존

under 영상 2010. 4. 3. 00:56
* 오늘도 변함없이 스포일러가-


대강 요약해놓으면 이렇게 한 바닥밖에 안 되는 일련의 역사적 사건은 그러나 유학적 관점에선 여러 층위의 문제를 안고 있다. 즉,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왕에게 '인(仁)한 선택'을 하라고 간언한 백이, 숙제의 충(忠), 그리고 아버지의 상도 미처 치르지 않고 손에 피를 묻히러 나서는 무왕에 대해 그들이 제기한 불효의 문제, 그리고 제후인 무왕이 천자로부터 정통성을 받은 은나라의 황제인 주왕을 침으로써 발생하는 불인/불충의 문제.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웃 나라의 백성들이 왕의 폭정에 시달린다면 그 나라가 곧 천자의 나라라고 해도 쳐서 백성들에게 선정을, 즉 인을 더 널리 베풀려 했던 무왕의 입장. 그리고 그 입장이 이미 '정통'으로 인정된 시대에 살아가면서 글을 쓰는 후대의 역사가와 지식인으로서 주나라와 무왕의 '정통성'을 전복하거나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충신 백이와 숙제의 행위를 인정해야 하는 미묘한 문제. 그리고 그런 입장의 사이에서 '이들은 인(仁)한 자들이다'라며 백이, 숙제를 살리고, 무왕의 정벌전쟁도 역시 지지했던 주공의 입장. 이런 것들은 명백하게 같은 유교적 이념을 지지하고 계승하면서도 구체적인 사안에서 그것을 서로 다르게, 심지어 대립하는 양상으로 실천하게 될 때, 그런 긴장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후대의 유학자들에게도 줄곧 중요하고도 미묘한 사안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단종 폐위 사건을 두고 사육신 중 한 사람이었던 성삼문 같은 경우는, 백이, 숙제가 주나라 땅의 곡식을 먹는 것을 거부하고 수양산의 고사리만 먹다가 굶어죽었다는 사실을 두고 --물론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충신으로 숭앙받는 점마저 비판하며, 더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 '수양산의 고사리는 주나라 땅에서 난 것이 아니더냐, 고사리는 왜 먹었냐'라고까지 비판을 한다. 그런가 하면 연암 박지원은 기존의 문필가나 철학자들이 주로 무왕이나 백이-숙제의 입장 가운데 어느 한쪽의 관점을 취해 한쪽을 지지하고 다른 쪽을 비판하는 논지를 편 데 반해, 그 역사적 정황에서 무왕과 백이, 숙제 뿐 아니라, 그 사이에 개입했던 주공까지도 모두 각자의 '인'을 실천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다소 특이한 관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어쨌든 어느 한편을 선이라거나 악이라고 단정하기 힘든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각자가 자신의 정당성에 입각해 자신의 선택을 할 때 올 수 있는 긴장을 보여주는 점에서 이 사건은, 어떤 관점에선 다소 코미디 같은 상황이나 엉성해 보이는 서사의 구멍이 있긴 하지만, 중요한 사례임엔 틀림없다. (이를테면, 아까 잠깐 언급했지만, 도대체 두 왕자가 모두 왕위를 거부하고서 자기들은 어진 왕을 모시겠다고 주나라로 도망을 가버리면, 고죽국의 운명은 대체 어떻게 되는 거냐고? 게다가 생뚱맞게 나타난 이들 이방인 백이와 숙제가 전투 태세를 다 갖추고 출정하려는 왕의 말고삐를 난데없이 불들었다 어쨌다 하는 서술은 대체 뭐라고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고-)_M#]




  1. 형제의 고사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형제의 이름을 모두 따서 '백이숙제전'이라고 지칭하기보다 '백이전(伯夷傳)'이라고 짧게만 지칭한다. [본문으로]
  2. 당시엔 아들들의 이름을 지을 때, 첫째면 '맏이'라는 뜻의 '백(伯)'을, 그 아래부터는 둘째면 '중(仲)', 셋째면 '숙(叔)', 그 다음엔 '계(季)'를 넣어 이름을 짓는 것이 일종의 관습이었다. 그러니 이름에 이 글자 가운데 하나가 들어가 있다면 그것을 통해 형제의 서열을 짐작 수 있다. 백이, 숙제에 관한 최초의 역사적 서술이라 할 수 있는 사마천의 <백이열전>엔 둘째 아들에 대한 언급이 나오진 않지만, 이런 관습에 따른다면 백이와 숙제 사이에 다른 형제가 하나 더 있었을 거라는 걸 짐작해 볼 순 있다. 왕위 선양 과정에서 언급이 되지 않은 건, 그 당시 살아있지 않아서였는지 왕 후보로 거론되지도 못할 정도로 그릇이 작아서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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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있음. (줄거리 노출 안 시키고 영화에 관한 글을 쓰고 싶은데, 항상 쉽지가 않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를 보면서 '메릴 스트립이 저렇게 예뻤던가!'라는 생각에 몹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가장 먼저 보았을 때만 해도 이미 내겐 중견 배우(좀 심했나?)의 인상을 주었던 메릴 스트립은, 연기력은 뛰어난지 몰라도 미모가 출중한 배우는 아니었다. 게다가 전성기 때의 '미모'를 자랑하던 로버트 레드포드와 함께 나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녀는 외모로 보면 이미 많이 지고 들어가야 했다...고 당시의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꽤 오랫동안 그녀가 배우가 된 것은 순전히 연기력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죽어야 사는 여자> 같은 영화에 그녀가 나온 걸 봤을 때는, '저 사람 어딘지 괴기스러운 구석이 있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서 보게 된 그녀는 '청초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외모였다. 이상하게도 그 영화를 보고 나서 그녀에 대한 나의 호감도는 훨씬 더 상승했다. 한때 예뻤다고 해서 지금 다시 예뻐진 것도 아닌데, 왜 그 사실 때문에 지금의 모습까지 더 좋아하게 되는지, 나의 이 심리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를 본 이후, 메릴 스트립의 영화를 좀 더 관심있게 보게 되었다. (다이앤 키튼도 뒤늦게 <애니 홀>을 보고 나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경우 중 하나였다.)

암튼 <줄리 앤 줄리아>가 그런 연유로 보게 된 영화 중 하나다. 일단 눈을 즐겁게 해주리라는 기대감을 품게 하는 '요리 영화'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경로로 접했던 총평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 데다, 메릴 스트립 주연의 영화라고 하니 한 번쯤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과연 요리 영화이기도 하고, 메릴 스트립 주연 영화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멘토'과 '블로깅'에 관한 영화, 즉 마음의 스승을 벗삼아 글쓰기라는 자신의 영역을 만나고 만들어 가는 과정에 관한 영화였다.


Posted by papy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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