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아이들이 모두 가버린
텅 빈 운동장에 남아있기를 좋아했었다.
그곳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아버지도,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사라져버린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조숙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정원(한석규)의
묘한 회상조로 시작된 "8월의 크리스마스"에는
"너 그때 그 일 생각나니?"라는 투의 대사가 유난히 많이 나온다.

오빠 정원과 함께 툇마루에 앉아 수박을 먹던 여동생 정숙도,
"오빠, 아직도 지원이 좋아해?
... 그거 생각나?
옛날에 오빠 학교 다닐 때 책에다가 지원이 사진 껴놓고 다녔잖아."
라고 하고,

여름날 오후, 아마도 그의 삶에서 유일한 사랑이었을
어린 시절 첫사랑 지원과 마주 앉은 정원도
"지원아, 너 생각나니? 내가 국민학교 때 니 일기 보고 날씨 베낀 거?"
라며 오래된 일기장을 뒤적이듯, 괜시리 어린 시절의 추억을 들춰 본다.

오랜 친구 철구와 오랜만의 술자리에서도 정원은
"너 그 제대하고 쫓아다니던 그 여자 생각나니?"
......
"어휴- 그때가 엊그저께 같은데 벌써 십 년 전이다."
라며 십 년 전 어느 날로 거슬러 간다.
그리고 스물아홉 살 마지막 날 했던 말까지 들춰내서
"술 먹고 죽자!"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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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파수

under 단상 2005. 4. 9. 02:03
그저 쓸데없는 관심과 걱정으로
성가시게 할 뿐이라고 생각했던 행동이
실은 자신을 한 번만 돌아봐 달라고
어렵사리 내민 어떤 이의 절박한 손길이었다면,
뒤늦게서야 그것을 알아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건 그냥 잘못된 언어와 손짓을 택한
당신의 잘못일 뿐,이라며
짐짓 외면해 버려도 괜찮은 걸까.
같은 언어를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자신의 소통체계의 문제였던 것은 아닐까.

대체
어떤 언어를 말할 줄 알아야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걸까.
대체
어떤 언어를 들을 줄 알아야
냉소와 무관심으로 심장이 굳어진 자신을
뒤늦게 발견하는 오류 따위는
더 이상 저지르지 않게 되는 것일까.



Posted by papy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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