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답게 살지 않기 위하여

under 단상 2007. 6. 21. 17:13

사람답게 살지 않기 위하여
-8월의 '어떤' 페스티벌에 대하여

  "어허, 그대의 말대로라면 사람이 만물과 다른 점이 없지 않소? 피부에 털과 살갗이 있는 것은 식물도 사람과 다를 게 없소. 또 부모의 사랑과 피가 섞여서 자식을 낳게 되는 것도 식물과 사람 모두 같은 것 아니오? 하물며 짐승과 사람 사이에는 무엇이 다르단 말이오?"

...(중략)...
  "허허, 그대는 정말 사람이구려. 사람에게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오륜(五倫)이나 오사(五事) 같은 예의가 있다오. 그렇지만 동물에게도 예의가 있으니,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함께 먹이를 먹는 것이 그들의 예의라오. 식물에게도 예의가 있으니, 군락을 지어서 가지를 뻗어 나가는 것이 그들의 예의지요. 사람 입장에서 만물을 보면 사람이 귀하고 만물이 천하지만, 만물 입장에서 사람을 보면 만물이 귀하고 사람이 천할 것이오. 그러나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이나 만물은 균등한 것이오.
  지혜가 없는 존재는 남을 속이지 않고, 감각이 없는 존재는 하는 일도 없는 법이오. 그렇다면 만물이 사람보다 더 귀한 것이 아니겠소?"

-홍대용, "의산문답" 중에서
(<우주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돌베개, 김아리 편역, pp.199-200)


33km라는 어마어마한 길이의 '돌무덤'을 쌓아 만든 (세간에서는 그걸 "방조제"라고도 부른다) 새만금 간척지를 '국제적 관광문화 지역'으로 알리기 위한 축하행사의 일환으로 올해 8월 1일부터 5일까지 군산에서 '새만금 락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한다. 이는 세계 최장 규모인 33km의 방조제 완공이라는 '성과'와 '친환경적 개발의 필요성'을 환기시키고 '친환경적 개발'이라는 '대안'을 모색하는 행사라 한다.

그래서, 방조제 건설을 기념하며 새만금을 "재발견"하기 위해 8월 3일 오후 3시 33분, 3만 3천명이 방조제 위에서 길놀이를 하며 풍물을 치고, 동시에 3만 3천개의 풍선을 띄워 올려 기네스 세계 기록에 도전을 할 것이라고 한다. 또 관람객들이 '새만금에 대한 추억과 갯벌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어패류를 '확보'해서 갯벌KTX, 진흙 머드팩 체험, 갯벌 생태계 체험, 조개 구워먹기 체험 등도 할 수 있는 별도의 행사장까지 마련한다. (제 손으로 죽여놓고, 그렇게 해서 죽은 것을 '추억'하는 법도 다 있다.) 그리고 이 축제의 음악 공연을 위해서는 윤도현 밴드, 동물원, 여행스케치, 유리상자, 자전거 탄 풍경, 김장훈, 바비킴, 부가킹즈, 마야, 강산에 등의 가수가 출연할 예정이다.

그런데 그들은 과연 알까? 그들이 33km라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 건설을 기념하고, '친환경적 개발'을 역설하고 있는 바로 그 땅 위에서 3억 3천일지 33억일지 알 수 없는 수의 갯벌 생명들이 한결 같은 시간, 어김없이 들어오던 바닷물을 하염없이
기다리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속수무책으로 자신들의 죽음을, 서서히 썩어 들어가는 몸뚱이를 지켜보며 고통스럽게 죽어갔으며, 바다가 길을 터주는 하루 5시간 동안만 갯벌에 나가 '그레'에 몸을 기대고 서서 바다와 놀고 조개와 이야기하며 일하면 되었던 전라북도 2만의 어민들이, 생활고에 쫓겨 일당 3만5천원을 위해 몸에 익지도 않은 밭일을 나가서는 새벽 5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을 하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견디다 못한 어민 한 분이 바로 지난 주에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으셨고, 바깥 사람들은 이미 죽은 것이라고 단념해 버린 갯벌과 그래도 마지막 숨결까지 함께 하기 위해 물막이 공사가 끝나고 나서도 여전히 바다에 나갔던 어민들 가운데 한 분인 류기화 님이, 공사로 인해 달라진 바다의 낯선 결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당신 몸이나 다름없었던 갯벌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던 사실을.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그저 우연히 일어난 불운한 사건이나 예기치 않은 사고가 아닌, 사람 손으로 일으킨,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었던, '인재(人災)'라는 사실을.

그러나 우리는 몰살당한 뭇생명들을 위한 진혼제를 올려도 시원치 않을 이 마당에, 이제 우리 손으로 불러온 재앙을 기념하고 우리 손에 학살당한 무고한 생명들의 죽음을 축하하는 축제를 열겠다고 한다. 이것이 대체 무슨 노릇인가. 사람으로서 할 짓인가,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사람이라서, 너무나 사람다워서 할 수 있는 짓이니까. 차라리 이렇게 사람다운 짓은 그만하자고 말하고 싶다. 더 이상 사람답게 살지 말자고, 사람 노릇 좀 하지 말고 살자고 말하고 싶다. 인간들 자신 뿐만 아니라,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존재들의 생사여탈권까지 쥐고 있는, 그런 식의 "인간적" 특권을 더 이상 누려서는 안 된다고, 더 이상 누리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그들은 과연 알았을까? 이른 바 '락' 가수라고 하여 8월에 열리는 그 축제라는 것에 초대된 그 가수들은 과연 그 축제의 의미를, 자신들의 동참의 의미를 충분히 알았을까? 물론 앞에 거명된 락 가수들을 락 가수라고 여기지 않는 음악 팬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세간의 평은 오히려 중요치 않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든 스스로를 락 가수라고 자기 규정했을 때, 그들이 이어받은 것은 락 가수'다운' 옷차림이나 락 음악'스러운' 리듬과 노래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 아니었어야 한다.

그들이 이어받은 것은 소위 락 음악의 정신이라야 했다. 국가주의나 애국심에 휘둘리지 않은 채, 제 나라 병사들의 헛된 죽음 때문만이 아닌, 그들 손에 죽어갈 '적국'의 사람들을 위해, 그저 모든 존재들의 평화를 위해 베트남전 참전 반대를 노래하던 그 락 가수들의 정신이라야 했다. 자신들을 길들이기 위해 뻗쳐 오는 사회의 손길에 대해, 남들 눈엔 그저 치기어린 반항으로 비칠지 몰라도, 스스로 만큼은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다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그런 락 가수들의 정신이라야 했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체인 목걸이를 목에 감고 헤드뱅잉을 해댄다고 해서 자신을 락 가수라 생각해 왔다면, 그들은 당연히 이제껏 큰 착각을 해왔을 뿐이다. 다만 이제껏 착각을 해 왔다고 해도, 진심으로 그 착각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이제라도 깨어나면 된다.

혹은 자본의 논리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락'의 이름을 위해, '친환경'의 선한 취지를 위해 동참하고자 한 것이었다면 자신이 노래하려는 '락'과 자신이 실현하려는 '친환경'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신이 실현하려는 선의가 어떤 것인지 지금이라도 돌아보면 될 것이다.
그래서 이제라도 돌아서면 늦지 않은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한 걸음을 내딛어 죽음의 길에서 한 발짝 빗겨 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 순간 그들은 락 음악의 정신을 살고 있는 것이고, 그런 한에서 락 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역시 제 손으로 죽인 것들을 억지로 '추억'하지 않고, 그저 살아가는 그대로의 그들을 이제서라도 마주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칠 것을 알고 있었"다고 나약하게 말하는 대신, 추억이 되지 않은 그들을, 사랑으로 간직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추억'에 스스로를 옭아맨 채, "이미 추억이 되어버린 시간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겠냐"며 지레 체념하려는 바로 그 찰나, 삶은 우리에게 나직이 말한다. 살아가는 한, 삶은 추억으로 그치지 않는다고. 살아가는 한, 삶은 오직 삶일 뿐이라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 어민이 갯벌에서 "그레질" 하는 모습 (*그레질: 백합(조개) 채취 방법의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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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행여 영문도 모른 채 페스티벌에 동참하려는 분들,
심지어 -어쩌면- 새만금을 위한다는 "선의"의 발로로 함께 하려는 분들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이 행사에 대한 포스터를 언뜻 지나가다 본 분들도 당연히 새만금을 다시 살려보자고,
방조제를 트자고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이 여는 페스티벌로 착각했을 정도라 하니까요.
그래서 아래에 출연하기로 되어있는 가수들의 홈페이지 목록을 첨부하니
애정을 가진 팬들이 있으시다면 그들에게 지금이라도 참가를 중단할 수 있도록
게시판에 호소문을 올리거나 편지를 보냈으면 합니다!




Posted by papy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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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라만상을 열치다

under 단상 2006. 11. 6. 18:44


삼라만상을 열치다: 한시에 담은 二十四절기의 마음, 김풍기 글 (푸르메)




아직 책을 다 읽지는 못했다.
이 책은 다음의 내용이 못내 궁금해서 숨가쁘게
다름 장으로 내처 달음박질치게 하는 책이 아니다.
도리어 천천히 한숨 고르고, 내 발밑을 살펴 가며
발걸음을 내딛게 하는, 그런 책이다.


저자인 김풍기 선생님도 쓰고 있지만
우리는 절기의 변화에서 멀어졌다.
"우주에 뿌리박은 우리 몸을 잊어버려
거대한 인간은 왜소해졌고,
우주와 호흡하던 성스러운 인간은 비속해졌다."
시계 바늘이 가리키는 숫자가 삶의 시간이고,
달력이 일러주는 날짜가 생의 순간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이 책은 "삼라만상을 열쳐" 우리가 망각한 시공간을 돌려준다.



사계절, 24절기를 테마로 그 삶의 순간들에서 느끼고 경험했던,
때로는 진솔하다 못해 적나라하기까지 한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궁금하신 분들은 "추분" 편 홍시 관련 에피소드를 읽어보실 것!^^)
한 시대의 지식인으로 살아가며 경계할 바에 대한 진지한 성찰들이 고루 담겨
"한시"라고 하는, 절기의 변화만큼이나 우리에게 낯설어진 언어의 결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한글의 유용성 덕분에 더 이상 한문을 배우지 않아도 되고,
그래서 한문이 익숙치 않은 현대의 우리들에게는
"한시"라는 장르 역시 생경하다.
그러나 "필요"의 문제와는 별개로 한문과 한시라는
고전의 세계가 우리에게 펼쳐주는 풍성한 삶의 풍경들은
놓치기 아까운 것이다.
그래서 좋은 번역과 해설을 통해 그런 글들을 접하는 일은
책장에 뽀얗게 먼지가 앉은 채 꽂혀 있던 아버지나 어머니의 책을
문득 뽑아 들어 먼지를 후 불어내선 들춰보는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옷깃을 세워도 이따금 스치는 바람에 등골이 썰렁해"지는 ("입동" 편) 가을날,
꽃망울 터지는 눈부신 봄의 기억은 아직도 너무 아득하고
하늘하늘한 여름 옷차림 생각만으로도 오한이 난다면
그냥 가을과 겨울 편을 먼저 펼쳐서 읽어도 좋다.
그러다 보면 혹시 아는가.
시간을 잊고 책 속에 눈을 묻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바깥을 보면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처럼 첫눈이 살풋 내려 있을지도.


"잠자리가 싸늘한 게 이상했는데
다시 보니 창문이 밝기도 하다.
밤 깊어 내린 눈 쌓인 걸 알겠나니
이따금 대나무 부러지는 소리 들린다."


(백거이白居易, <밤눈(夜雪)> -“대설”편 수록)



*****

정말 존경하고 좋아하는 김풍기 선생님께서

그간 연재하고 있던 글을 모아 새로 묶어 낸

한시 해설집.

다정다감하면서도 이지적인 선생님의 성품이

그대로 묻어나는 정말 따뜻하고 좋은 책이다.

한문 전혀 몰라도 읽을 수 있음.

번역이 워낙 좋기 때문에. ;)


글이 다소 *광고성* 글 냄새가 나는 것은,

알라딘에 서평으로 올린 것이라서. ㅋㅋ

선생님 책 많이 팔려야 할텐데~

근데 정말 간만에 이 게시판에 새 포스팅 올렸다.


Posted by papy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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