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라만상을 열치다

under 단상 2006. 11. 6. 18:44


삼라만상을 열치다: 한시에 담은 二十四절기의 마음, 김풍기 글 (푸르메)




아직 책을 다 읽지는 못했다.
이 책은 다음의 내용이 못내 궁금해서 숨가쁘게
다름 장으로 내처 달음박질치게 하는 책이 아니다.
도리어 천천히 한숨 고르고, 내 발밑을 살펴 가며
발걸음을 내딛게 하는, 그런 책이다.


저자인 김풍기 선생님도 쓰고 있지만
우리는 절기의 변화에서 멀어졌다.
"우주에 뿌리박은 우리 몸을 잊어버려
거대한 인간은 왜소해졌고,
우주와 호흡하던 성스러운 인간은 비속해졌다."
시계 바늘이 가리키는 숫자가 삶의 시간이고,
달력이 일러주는 날짜가 생의 순간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이 책은 "삼라만상을 열쳐" 우리가 망각한 시공간을 돌려준다.



사계절, 24절기를 테마로 그 삶의 순간들에서 느끼고 경험했던,
때로는 진솔하다 못해 적나라하기까지 한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궁금하신 분들은 "추분" 편 홍시 관련 에피소드를 읽어보실 것!^^)
한 시대의 지식인으로 살아가며 경계할 바에 대한 진지한 성찰들이 고루 담겨
"한시"라고 하는, 절기의 변화만큼이나 우리에게 낯설어진 언어의 결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한글의 유용성 덕분에 더 이상 한문을 배우지 않아도 되고,
그래서 한문이 익숙치 않은 현대의 우리들에게는
"한시"라는 장르 역시 생경하다.
그러나 "필요"의 문제와는 별개로 한문과 한시라는
고전의 세계가 우리에게 펼쳐주는 풍성한 삶의 풍경들은
놓치기 아까운 것이다.
그래서 좋은 번역과 해설을 통해 그런 글들을 접하는 일은
책장에 뽀얗게 먼지가 앉은 채 꽂혀 있던 아버지나 어머니의 책을
문득 뽑아 들어 먼지를 후 불어내선 들춰보는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옷깃을 세워도 이따금 스치는 바람에 등골이 썰렁해"지는 ("입동" 편) 가을날,
꽃망울 터지는 눈부신 봄의 기억은 아직도 너무 아득하고
하늘하늘한 여름 옷차림 생각만으로도 오한이 난다면
그냥 가을과 겨울 편을 먼저 펼쳐서 읽어도 좋다.
그러다 보면 혹시 아는가.
시간을 잊고 책 속에 눈을 묻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바깥을 보면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처럼 첫눈이 살풋 내려 있을지도.


"잠자리가 싸늘한 게 이상했는데
다시 보니 창문이 밝기도 하다.
밤 깊어 내린 눈 쌓인 걸 알겠나니
이따금 대나무 부러지는 소리 들린다."


(백거이白居易, <밤눈(夜雪)> -“대설”편 수록)



*****

정말 존경하고 좋아하는 김풍기 선생님께서

그간 연재하고 있던 글을 모아 새로 묶어 낸

한시 해설집.

다정다감하면서도 이지적인 선생님의 성품이

그대로 묻어나는 정말 따뜻하고 좋은 책이다.

한문 전혀 몰라도 읽을 수 있음.

번역이 워낙 좋기 때문에. ;)


글이 다소 *광고성* 글 냄새가 나는 것은,

알라딘에 서평으로 올린 것이라서. ㅋㅋ

선생님 책 많이 팔려야 할텐데~

근데 정말 간만에 이 게시판에 새 포스팅 올렸다.


Posted by papy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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