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의 썸머

under 영상 2010. 8. 27. 14:26

'친구'라는 말로 자신을 속여가면서라도 곁에 머물고 싶은 '사람'이 있다. 아니, 내 마음의 설렘은 친구를 대하는 심상함과는 조금도 닮아있지 않은데도 친구라는 호칭이 그 사람 곁에 머물기 위해 내가 치러야 할 대가라면, 자기기만이라는 악마와 거래를 해서라도 그렇게 누군가의 곁에 머물고 싶은 그런 '순간'이 있다. (여주인공의 이름이 한 사람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인 동시에 여름이라는 한 시절을 지칭하는 데에는 아마도 그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마치 그런 사랑은 그 대상의 문제라기보단 그런 들뜬 열병과도 같은 감정의 시기라는 것이 있는 것과 같다는.) 그러나 그것은 분명 악마와의 거래였기 때문에 그 거래가 끝나는 순간, 그 자기기만의 마법이 풀려버리는 순간, 그 짧은 희열의 대가를 스스로 혹독히 치러내야만 한다. 

'(500)일의 썸머'는 그 도입부에서도 말하듯 러브 스토리가, 두 남녀가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반하고 사랑에 빠져 경험하는 짧은 열병과도 같은 희열과 그것이 지나간 후 들끓는 증오와 분노 속에 지나야 하는 마음의 지옥, 그리고 그것마저 지나고 찾아오는 평온함을 담아낸 영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썸머의 시점이나 썸머와 톰의 시점의 교차가 아닌, 전적으로 톰의 시점에 의해 진행된다. 그리고 이 영화만의 독특함만은 아니라고 해도, 영화는 순차적인 시간의 순서에 따라 사건이 진행되지 않고, 띄엄띄엄 끊어지고 뒤섞인 톰의 기억의 파편들이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느낌으로 만들어져 감탄을 자아낸다. 사랑했던 기억과 미워했던 기억이 논리적인 순서를 무시한 채 등장하는 이 구성에 대해선, 사랑한 대상에 대한 기억을 정리하면서 그 사람을 되찾을 수도 있으리란 헛된 희망의 고문에 스스로를 밀어넣으며, 한편에선 좋아했던 사람에 대해 나쁜 기억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욕심과, 다른 한편에선 자신에게 상처줬던 대상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미움이 자신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요동 치는 걸 겪어본 사람이라면 감탄할 수밖에 없으리라. 특히, 내가 사랑했던 그녀의 모든 것이 순식간에 내가 증오하는 그녀의 모든 것으로 둔갑하던 장면의 배치는 가히 천재적! 게다가 영화를 관통해서 흐르던 매력적인 음악들과, 뮤직비디오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음악과 화면이 감각적으로 구성된 장면들 역시, 굵직한 사건 하나 없어 자칫 밋밋할 것 같은 영화에 나름의 성격과 특색을 부여한다. 

그리고 캐릭터 위주로 이루어진 이 영화의 독특한 매력은, 주인공을 맡은 조셉 고든-레빗과 조이 디샤넬(Zooey Deschanel 이라는 이름의 이 여배우의 이름은, 자칫 "주이"로 읽기 쉽지만, "조이"로 읽어야 한다고 한다.)이라는 배우들의 매력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도저히 붙잡아맬 수도 그러잡을 수도 없는 사랑스런 4차원 매력의 소유자 썸머 핀의 캐릭터는 조이 디샤넬이라는 여배우 안에서 빛을 발한다.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비틀즈 멤버 가운데 링고 스타를 가장 좋아한다는 이 여자, 어찌 보면 튀기 위해 너무 애쓴다 싶어 꼴불견으로 느껴질 법도 한데, 그녀의 눈망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 순간 만큼은 그런 삐딱한 마음 따위 자취를 감춰 버리고 만다. 헌데 그녀의 캐릭터에 대한 공감은 그녀의 독특함이 얼마나 보편적인 것인지 확인하는 데서 온다. 즉 그런 그녀는 유일하게 독특한 대상이라기보다, 너무도 쿨해서, 정작 자신은 쿨함과는 전혀 거리가 멀지만 쿨한 척 흉내를 해서라도 가까워지고 싶었던, 실은 그래서 자신의 범속함과 비루함을 더욱 도드라지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던 선망의 대상에 대한 범인(凡人)들의 감정과 기억의 복합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약간은 자신감 없고 수줍은 표정 뒤에 자신만의 세계가 있을 것 같으면서도, 사랑 앞에서 그 세계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도 모두 감수할 각오가 된 소심한 남자 톰 핸슨은 여전히 소년 같은 배우 조셉 고든-레빗의 연기를 통해 생명력과 설득력을 얻는다. 다만 영화 내내 유지되던 리얼리티를 통해 얻어진 영화의 힘이, 현실이라기보단 차라리 공허한 희망사항과도 같은, 열병과도 같던 여름이 지나고 평온한 가을이 올 것이라는 희망적 결말 앞에서 다소 맥이 빠져버리긴 하지만 (뭐, 그건 사실 감독이나 작가의 짓궂은 '유머'인 것도 같고),  '우리 모두는 썸머와 사귄 적이 있다'는 영화의 카피처럼 가슴 한켠이 아린 한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도 키득대며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는 건 모두 그들 덕분- ♡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법한 지독한 실연, 진저리나는 기억이 누군가에게선 이런 영화로 태어날 수 있는 건 역시 재능의 차이인 건지. 뭐가 됐든, 어쨌든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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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에 귀기울임

under 단상 2010. 6. 12. 22:43
아무 말 하지 않을 때조차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 사람이란 동물이지만, 대부분은 모두가 일시에 떠들어 대면서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음성엔 귀기울이고 있지 않은 것이 가장 일상적인 형국이 아닌가 한다. 어릴 때와 같은 활자중독증은 내게선 없어진 지 오래지만, 어쨌든 앞다투어 튀어나오는 말들,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려는 활자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곳이 내가 속한 세계라는 점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 속에서 --최근 들어선 더더욱-- 빈번히 그런 의문에 부딪친다. 지금 접한 이 이야기는 또 어떤 승자의 서사일까 하는. 결국 목소리 큰 사람만이 떠들어대는 세상, 혹은 들려오는 것, 들려진 것이란 항상 승자들의 목소리뿐인 세상에서 우리는 정작 들려오는 것이나 목소리가 아니라 침묵에 귀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과연 어떻게 하면 그 소음을 잠재우고 고요와 침묵, 들리지 않는 약자들이 소리에 귀기울이는 '드문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까. (영화 <싱글맨>을 보다 보면, 대략 이렇게 집약될 수 있는 대사가 나오는데 --대사가 나온 맥락은 지금 내가 말하는 내용과 전혀 다르지만-- 그 대사가 순간 너무나 마음에 와 닿아서, 원작이라는 소설이 문득 읽어보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Posted by papy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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