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생명의 갯벌에서 홀로코스트의 사막으로


  나치에 의해 자행된 600만 명에 달하는 유태인 대학살, 홀로코스트. 21세기를 살아가는 많은 우리들은 비록 그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어도 그 역사가 증언하는 인간의 폭력성과 잔혹성,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아리아인 순종주의(純種主義)의 극단적 배타성을 어떤 식으로든 기억하고, 반성하고, 경계한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부 역사학자들이나 이 시대의 또 다른 인종주의자들이 그런 사건이 실재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글을 기고하거나 발언을 할 때, 그것이 그 사건의 희생자들을 다시 한 번 죽이는 일이나 다름없다는 걸 알기에 극렬하게 비판하고 분노한다.

  그런데 독일 민족, 그 가운데서도 히틀러라는 한 지도자의 광기와 그에게 세뇌된 어리석은 민중들에 의해서나 자행되었다고 여긴, 그래서 다른 시대, 다른 나라의 남 얘기라고 치부했던 이 홀로코스트의 잔혹한 역사는 불행히도 우리가 숨쉬고 있는 이 시대, 이 땅 위에, 우리 손에 의해 되풀이되고 있었다. “친환경” 새만금 간척 사업이라는 거창한 이름 아래서.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에 대한 배려 따위는 깡그리 잊은 채, 살릴 수 있는 능력은 커녕 오로지 죽일 수 있는 “무능력”을 자신의 우월성의 표지라 착각하는 인간의 폭력 앞에 스러져간, 이름조차 다 부르지 못할 만큼, 헤아릴 수 없을 만치 많은 생명들의 죽음이 홀로코스트의 그것과 무엇이 다를까.

  대추리에 평화를, 새만금에 생명을 되찾기를 기원하는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한미 FTA 반대 대장정 길은 새만금의 해창 갯벌 위에서 그 첫걸음을 내디뎠다. 5월 11일 아침 9시 대장정 출정식을 위해 찾아간 그곳은 내가 3년 전에 한 번 걸음했던 곳이었다. 강원도 산골에서 자라 단 한 번도 구경해 본 적 없는 갯벌이란 곳을 역사 속에서 영영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보기라도 하자며 해창 갯벌을 찾았었다. 그런데 그날은 마침 새만금 갯벌의 마지막 숨구멍인 방조제 4공구 물막이 공사를 보류하라는 법원의 결정이 내려와, 공사가 일시적으로나마 중단되었던 날이었다. 그곳은, 그래서  그 기쁜 소식을 갯벌의 뭇생명들과 함께 나누려 때마침 그곳을 찾았던 문규현 신부님을 우연히 뵙고, 신부님께 말씀을 듣는 동안에도 간혹 발바닥이나 발목을 찔리는 따끔거림으로 작은 갯벌 생명들의 존재감을 고스란히 느끼고, 우리가 불과 몇 분전까지 서있던 땅이 슬금슬금 젖어들더니 금세 발목을 적시고 종아리까지 차오르는 밀물에 놀라 웃으며 뭍으로 쫓겨 올라오던, 바로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다시 찾아간 그곳엔 올해 4월 22일 방조제 끝물막이 공사의 종결과 더불어 다시는 물이 차오르지 않는 말라버린 뻘의 진흙 위로, 간척사업 중단을 기원하며 최병수 작가와 주민들이 함께 세웠다는 장승들, 도요새 목조각이 올라앉은 솟대들만이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부터 싸움을 시작했고, 여전히 그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그들 사이에 섞여 서서 우리 역시 그들의 투쟁을 함께 해나가리라 약속했다. 그리고 길에 나섰다.

  두어 시간쯤 걸어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지평선"만이 까마득히 펼쳐진 계화도 갯벌 앞에 다다랐다. 1억2천만 평에 달하는 새만금 갯벌 중에서도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하는 계화도 갯벌은 그곳 분들 말씀처럼 이미 갯벌이 아니었다. 썩은 물만 군데군데 고인 채 쩍쩍 갈라진 흙바닥이 고스란히 드러난 거대한 사막이었다. 예정보다 일찍 첫날의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들의 발길은 자연히 한 때는 갯벌이었던 그 땅 위로 향했다.

  우리가 진입하던 길 끄트머리까지 물이 넘치도록 고였다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주듯, 우리들 발길이 닿는 모든 곳에 조개며 작은 생물들의 주검들이 널려 있었다. 갯벌 위에 좁쌀마냥 동글동글 뭉쳐있던 모래무지들은 미세한 갯벌 벌레들이, 갯벌 정화 기능까지 겸해서 하는 그들만의 일상의 활동의 흔적이라 하는데, 바닷물이 들어왔으면 씻겨나갔을 그 흙알갱이들이 그대로 말라 뻘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보노라니, 아팠다. 마지막 꿈틀거림 그대로 흙 위에 붙박힌 채 까맣게 타버린 갯지렁이들과 몸을 숨길 곳을 찾아 뱅글뱅글 맴돌았던 절박한 자취만을 흙 위에 새겨놓은 채 이젠 마지막 뒤척임마저 멈추어 버린 고둥들의 모습을 가만 들여다보니, 아팠다. 이십 분, 삼십 분이 넘도록 걸어도 바닷물이라곤 보이지 않는 그 “사막” 위에서 하루에 두 번씩, 어김없이 들어와 자신들을 보듬어 주던 바닷물을 하염없이 기다린 듯, 흙바닥 위로 고개를 삐죽이 내밀고 있던 대나무 마디 모양의 죽합, 백이면 백 무늬가 다른 백합, 그리고 이름 모를 무수히 많은 다른 조개들이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속수무책으로 자신들의 죽음을, 서서히 썩어 들어가는 몸뚱이를 지켜보았을 것을 생각하니, 아팠다.

  그래서 너무 늦었지만, 너무 무력하고 무심하고 무감했던 우리 몸과 마음을 그들의 주검 앞에 낮춰 백팔 번 절하며 용서를 구했다. 자신들의 죽음 앞에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을 뭇생명들 앞에 값싼 눈물 몇 방울이 무슨 위로가 되었으랴만, 그래도 술잔 한 번 부어주지 못한 친구들의 죽음 앞에 눈물 몇 방울 뿌릴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절하고 일어나 다시 걸음을 옮겨 또 다른 친구를 만났다. “갯벌 배움터 ‘그레’”를 꾸리고 계신, “자칭 타칭 계화도 추장”이시라는 고은식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계화도 동네 뒷산을 타고 매봉에 올랐다. 부드러워 보이는 야트막한 동네 뒷산이라고 얕잡아 봤는데 보통 가파른 게 아니어서 수월치는 않았지만, 선생님께서 피로 회복에 좋다며 찔레순이며, 새콤한 산나물 이파리를 따서 건네주시는 것 널름널름 받아먹으며 다들 무사히 봉우리에 올랐다.

  매봉에서 굽어보이는 갯벌은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넓었지만, 물길은 우리 시야가 간신히 걸리는 그 언저리에 조금 찰랑대고, 거기서 흘러나온 몇 줄기 물이 군데군데 고여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갯벌로 들어오는 바다의 물길을 갯골이라고 한다는 설명과 함께, 그 허허벌판 위에 몇 줄기 선처럼 그어져 있는 갯골을 보고, 또 소금기만 머금은 채 바싹 말라 쩍쩍 갈라져 있는 갯벌 바닥을 보노라면 광막한 그 땅을 다 품어내지 못해 애달파하는 바다의 마음이, 간절한 몸짓이 느껴진다고 나직이 뇌시는 고은식 선생님 음성은 이미 선생님 목소리가 아니라, 바다의 목소리였다. 겨울을 나기 위해 시베리아에서 호주로 이동하는 도요새 무리들이 여정 중간에 바닥나 버린 체력을 꼬박 한 달 동안 새만금에서 먹고 쉬며 보충한 후 호주를 향해 다시 날아오르곤 한다는 말씀을 해주시던 선생님의 그늘진 음성은 정작 자신이 죽음 앞에 서 있으면서도, 자신이 사라져 쉬어갈 곳이 없어질 도요새들의 신산한 운명을 먼저 근심하는 갯벌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삼보일배를 이끌었던 분들이나 “갯벌 배움터 그레”의 고은식 선생님, 그 전날 부안생태활력소에서 당신께서 직접 찍으신 새만금 생물들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이야기를 들려주신 허철희 선생님 같은 분들의 목소리가 공공의 이익, 지역 발전에 반하는 이기적 발상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대체 그 분들이 당신들이 말하는 이익에 반해서, 당신들이 말하는 “소위” 이기주의에 근거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새만금 개발을 추진했던 이들은 그 개발사업이 어마어마한 경제적 이익을 담보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하는데, 과연 그것까지 마다해가며 그 분들이 취할 수 있는 “사사로운 이익”이란 게 도대체 무엇이라는 건지. (불행히도 갯벌 생명들을 모두 걸어야 얻어진다 했던 그 경제적 이익의 약속조차 실상은 허상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개발이 가져다 줄 이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조개 줍고, 게 잡고, 전어 팔아 버는 푼돈으로 그분들이 과연 크게 "한몫" 챙기시기라도 한다는 것인지. 갯벌의 진흙에 발목을 적시며 소금기와 햇볕에 그을린 채 구리빛 피부로 살아가겠다는 것이 "사욕"이라는 건지.

  그 분들은 그저 자신들에게 들려온 갯벌 생명들의 약동하는 숨소리를, 그 숨소리가 끊어진 괴괴한 사막의 갯벌에서 들려오는 생명들의 고통에 찬 외침을,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을 만큼 천지만물과의 소통체계가 막혀버린 우리들에게 들려주시고 전해주셨을 따름이다. 부디 그 소리에 귀기울이고 들을 수 있는 그분들의 능력을, 들을 수 없는 자신들의 무능력으로 막아버리고 왜곡해버리지는 말기를 바란다. 그것이야 말로 인간들의 무지와 무능력, 무자비함 앞에서도 숨결이 남아있던 마지막 순간까지 오롯이 삶으로, 일상으로 묵묵히 답해 왔던 갯벌 생명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니까. 이제 더 이상 그들을 향해 당신들의 요구를 들으라 명령하지 말라. 들어야 하는 건, 귀기울여야 하는 건 당신들, 우리 인간들 몫이니까.



"人之有技 媢嫉以惡之 人之彦聖 而違之 俾不通 寔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
(다른 사람이 가진 재능을 시기하여 미워하고,
다른 사람의 뛰어남과 어짊을 꺼려하여 통하지 못하게 한다면
이는 진실로 남을 포용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 이는 우리 자손과 백성을 보호할 수 없으리니,
이 또한 위태할 것이리라!)

-大學
Posted by papy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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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deus

under 영상 2006. 1. 8. 18:57
늘 그래왔던 것 같지는 않은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실존인물의 생애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 영화들을
무척 싫어하게 되었다.
그런 영화들은 애써 그 인물의 결점을 드러낼 때조차도
그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나 부정적 평가를 불러일으키려 한다기보다
그 인물의 "인간적 면모"를 강조해 "애정"을 구걸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교훈을 전달하려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판이하게 다른 인물의 삶을 다룬
일대기 영화들이 양적으로 쏟아져 나와도
그들의 삶에 접근하는 시선은 기본적으로 천편일률적인 듯이 보인다.
그들에게는 삶을 뒤흔든 단 하나의 사랑이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전생애를 바쳐 이룩한 하나의 업적이 있고,
이미 언급했다시피, 그런 초인적 업적 뒤에 자리한
그 인물의 인간적 면모인 인간적 결점이 부각된다.


그러나 "아마데우스"는 서사의 구도 자체에서부터
실화에 기반한 그런 일련의 일대기 영화와는
성격을 달리 한다.
"아마데우스"는 주인공이 아닌 그의 숙적의 시점에서
주인공이 되는 인물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물론 남다른 인물의 극적인 삶을 다루는 데 있어
그 인물의 숙적이 등장하는 경우는 있지만,
대부분 그 인물의 관점에서나
혹은 그 인물에 대해 호의적인 제3자의 입장에서
너무나 평면적인 악역을 맡는 경우가 많다.
(혹은 그런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아마데우스"에서는,
최소한 영화에서 그려지는 인물의 성격에 기반해서는
숙적 살리에리는 물론, 주인공 모차르트조차도
전혀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인물은 아니다.
자신의 재능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직설적으로 불만과 오만을 드러내는 모차르트와
진심으로 모차르트의 재능을 알아보면서도
그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로
그를 파멸로 몰아가는 살리에리.

한데 이 영화는 전혀 좋아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두 인물들에 대해 놀랄 만큼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동일한 성격의 인물들로, 동일한 뼈대의 사건들을 다루었더라도
이 영화가 취한 시점을 통하지 않았더라면 영화는
분명히 다른 감상과 다른 이야기들을 불러일으켰을 것 같다.
하지만 단순하게 천재의 비범한 삶을 다루는 대신
이 영화는 음악적 성취를 둘러싼 각 인물들의 충돌하는
욕망의 곡선을 그려내며 인생에 대해 남다른 관점을 시사하였다.

그건 어쩌면 전형적인 일대기 서사 방식 대신
숙적의 눈을 통해 바라본 한 천재 음악가의 삶에 대한 서술이라는
독특한 시점을 택한 데서 누릴 수 있었던 이점인지도 모르겠다.
관객들은 살리에리가 그려내는 모차르트를 따라가며
묘하게도 그를 무작정 미워하게 되기보다
천재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어린 아이와 같은 천진성 때문에
이른 바 "어른답게" 행동하는 사회적 규범을 익히지 못하고
세상의 눈 밖에 난 천재의 비애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이 그러하였을 것이듯,
대부분의 범인(凡人)들은
영화가 그려낸 극적 최후의 실화와의 일치 여부와는 무관하게
그를 그런 죽음으로 몰아갔던 "凡人" 살리에리의 심정과
그리고 그랬던 그를 광기로 몰아간 그 이후의 정황들에도
진심으로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이 이 영화가 지니는 차별화된 매력이다.
단순히 천재의 삶을 "인간적인 차원"이라는 잣대를 들이대
보통 사람들의 삶과 동일선상에 놓지 않으면서도,
그가 겪었을 고뇌나, 그가 일했던 여건, 그의 성격, 그리고
심지어 그의 지독한 술버릇에까지도 공감케 하면서
예술가로서의 그의 비범함을 충분히 인정하게끔 한다.

또 한편으로 그 비범함을 빛나게 해주는 조연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과 투철하게 싸웠던 한 사람으로서
그 후광에 존재했을--실제 살리에리는 아니더라도--
살리에리와 같았을 무수히 많은 사람들,
바로 우리 자신들까지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보듬어 안고 갈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물론 영화 곳곳에 적절하게 들어간
모차르트의 작품들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음악적 소양이 부족한 관계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할 밖에.
어쨌든 이 영화가 개인적으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모차르트 음악을 듣게 했던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됐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당구대 위에 오선지들을 잔뜩 펼쳐놓고
당구공을 굴려가면서 작곡에 몰두하고 있는 모차르트의 모습과
그 때 흐르던 서정적 선율이, 이 영화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다.

Posted by papy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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