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under 단상 2009. 3. 10. 22:21

어떤 사람과의 만남을 나는 곧잘
하나의 우주를 만나는 것,
혹은 새로운 우주를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그것은 어떤 만남이 때론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는 의미에서도 그렇지만,
그 사람과 만든 우주에서는 그 사람이라는 공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과의 만남이 어그러진다는 것은, 그 사람과 만든 우주에서
내가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게 되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더 이상 그 사람이라는 공기가 존재하지 않는 우주에
내던져진 것과도 같으니까.
아니, 오히려 그 사람이라는 공기가 더 이상 내가 숨쉴 수 없는 공기가
되어 버린 것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 공간에서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 산소가 다 떨어진 후에는 결국, 그곳을 떠나는 것 말고는
별 다른 도리가 없다.

언제쯤, 떠날 필요가 없는 우주를 만날 수 있을까.



Posted by papy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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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under 단상 2009. 3. 2. 14:28

내가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한다는,
단순한 성향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나는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데
일정한 속도를 준수해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그리고 내 편에서 속도위반으로 느껴지는
어떤 속도를 가진 사람을 나는 쉽게
믿지 못하는 편이다.
뭐랄까..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의 친밀감이라는 것에 일정한 수위 혹은 거리가 있어서
그 거리 자체가 완전하게 무너진 관계란 있을 수 없고,
다만 그 거리에 얼마만큼의 속도로 도달할 수 있느냐가
결국 관계의 지속 시간을 결정한다고나 할까.
(말 되나..)

간단하다.
이를테면,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빨리 친해진 사람에게는
뭔가 빨리 질릴 수밖에 없다는 거다.
빨리 친해진 뒤에 좁혀들 수 있는 거리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빨리 도달한 만큼,
더 이상 좁혀들 수 있는 거리는 없기 때문에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달까.

내가 사람을 받아들이는 데에 벽이 너무 많은 탓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누군가를 알아가는 데에
좀 시간을 들일 수 있는 관계가 좀 더 편하다.
후다닥 알아'치우고' 다음으로, 다음으로 넘어가 버리는 거,
나한테는 별로 잘 안 맞는다.
그래서 그런 속도를 지닌 사람을 쉽게 믿지도 못하고.

그냥.
시간을 견딜 수 없는 관계는,
허망하지 않던가.
나만 이런가.


Posted by papy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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