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함께 하겠는가

under 단상 2009. 11. 15. 01:11

"너에게 사랑은,
영원히 함께 행복할 사람...

나에게 사랑은,
함께 불행해도 좋을 사람..."


예전에 <아일랜드> 볼 때,
국(현빈)에게 하던 중아(이나영)의 이 대사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뭐야, 매조야? 뭐 이런 생각 들었달까.

그런데 요즘 그런 생각이 간혹 들 때가 있다.
누군가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아마도 함께 마냥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닐 것 같다는.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오히려
지상에 천국 같은 건 없으리란 것을 알고도,
살아간다는 것이 때로는 지옥이라는 것을 알고도,
때론 슬프리라는 것, 아프리라는 것을 알고도,
그리고 그 슬픔과 아픔의 원인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지독한 인연으로 엮인 서로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도,
끝까지 함께 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기꺼이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 아닐까,라는.

그건 아마도 내가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에게 인사치레로라도
항상 건강하세요, 항상 행복하세요,
같은 말 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던 것과
무관치 않을 것 같다.
왜냐면 그런 삶은 없으며,
설사 있다해도 그런 삶을 꿈꾸는 것이
나에게는 무의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슬픔이나 아픔, 고통을 조금도 겪지 않고
삶에 아무런 마디도 만들어지지 않은 채
미끈하게 사는 것이
나에게는 조금도 '행복'처럼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식 같은 데 가도
혼인서약 같은 거 별로 귀담아 듣지도 않았고,
그나마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 구절 중에 '아플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함께 하겠는가,라고
뭐 그 비슷하게 묻는 구절이 있다.
그 질문은 적절하다.
그런데 거기에 또 다른 단서도 있는 것 같다.
그 슬픔이나 아픔이 외부의 다른 대상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바로 서로가 그 슬픔과 아픔의 원인일 때조차도
그렇게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서로 누구보다 가깝거나 사랑하지 않는 한,
그렇게까지 상처받을 일이 없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서로가 아닌 한
아마도 서로로 인해 아프거나 슬프지 않을 것이다.
아픔과 슬픔이 온다면 아마도
별 상관 없는 다른 사람들보다
가까운 사람으로 인한 경우가 가장 많을 것 같다.

그러니
인간이란 때로
너무나 서로에게 지독하게 얽혀 있어서
서로를 떼어낼 수가 없어서
그런데도 불구하고 떼어내야 해서,
혹은 떼어지지 않아서
서로로 인해 아파할 것이다.
그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해탈이겠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진
서로를 지독하게, 지독하게 겪어내야 할 것이다.
그래도 함께 하겠는가,라고 묻는다면
난 그렇다고 대답하겠다.
왜냐면 그게 삶이니까.
그리고 난 살아가는 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그것을 포기한다면 이미 그것은
삶이 아닐 테니까.



Posted by papy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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